목양편지

제목(240901) 온기2024-09-01 08:57
작성자 Level 10


온기


할머니 장례식이었습니다. 자주 뵌 건 아니었지만 볼 때마다 예뻐해주시고 용돈 주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입관을 치르고 출상했습니다. 할머니를 모시기 위해 온 친척들이 선산에 모였습니다. 저의 본적이기도 한 경남 창녕군 유어면에서는 독특한 장례 절차가 있었는데, 고인을 매장하기 전 관을 열어 시신이 잘 안치 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정리했습니다. 큰 손자로서 앞장서서 관을 열고 할머니의 시신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리저리 살피며 만지다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가지런히 놓기 위해 잡았던 할머니의 팔이 얼음장처럼 차가웠기 때문입니다.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서늘함을 혈육인 할머니에게서 느꼈던 그 당황스러움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생명의 온기를 잃어버린 육체의 싸늘함은 살아있는 영혼까지 얼어붙게 할 정도로 강력했습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양부모 밑어서 자랐습니다. 양부모는 잡스와 함께 매주일 교회에 나갔는데,  잡스가 13살 때 목사님이 하나님의 예정을 설교했습니다. 잡스는 목사님에게 질문했습니다. “만약 제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린다면 하나님은 이미 제가 어느 손가락을 들어 올릴지 아시나요?” 목사님은 “그렇단다. 하나님은 모든 걸 아신단다”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잡스는 라이프 잡지 1968년 7월호 표지를 목사님께 내밀었습니다. 거기에는 기아에 허덕이는 나이지리아 동부 지방의 어린이들의 충격적인 사진이 실려있었습니다. 잡스는 질문했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이것에 대해서도 아시고 이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아시겠네요?” 목사님을 대답했습니다. “그렇단다. 하나님은 그것도 알고 계시단다.” 그 후 잡스는 기독교를 거부하고 나중에는 선불교에 심취하게 됩니다. 잡스는 하나님이 죄없는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는 현실을 알면서도 외면하면 차가운 신으로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교리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기아로 죽어가는 생명과 아이들에게 대한 따뜻함이 없었던 목사님의 대답이 참 아쉽습니다. 


 

아침 저녁 계절의 변화를 느낍니다. 선선한 바람이 살갖에 닿을 때 하나님의 섭리가 신비롭기만 합니다. 그렇게 들어켰던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곧 따뜻한 커피와 폭신한 파운드 케익을 주문할 때가 코 앞까지 온 것 같습니다. 생명은 온기입니다. 살아있는 육체, 생동감 있는 공동체는 따뜻합니다. 우리 교회는 작지만 따뜻한 공동체입니다. 아프고 연약한 지체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손잡아 주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목자의 형편을 늘 염려하며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제 고신대가 개학하면 청년들의 뜨거운 열정과 기성세대의 경험이 만나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는 수요 기도회도 진행될 것입니다. 이 온기가 지역으로 세상으로 흘러들가길 원합니다. 차가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사명, 우리가 배우고 경험한 하나님의 온기를 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선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