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변화를 맞아 폭우와 폭염으로 변덕스러웠던 여름이 지나갑니다. 아침 저녁 하늘이 제법 어둑어둑하고 이마에 닿는 바람도 선선합니다.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다만 며칠 전부터 장대비가 내렸지요. 태풍의 영향으로 생긴 비구름이 사실상 장마나 다름없는 비를 길게 뿌릴 예정이라고 하니 참고하십시오.
날씨 못지 않게 제 마음도 제법 비가 내리는 중입니다. 지난 목양 편지에서 더 손잡고 섬기고 사랑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변덕스럽게도 며칠 사이 우울해졌습니다. 이건 다른 누구 때문이거나 일이 아닌 저 자신 때문입니다.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수년 간 저를 괴롭힌 육체적 통증이 참 많이 찌릅니다. 치료, 재활, 운동에 힘썼지만 별로 차도가 보이지 않아 답답합니다. 지친 육신이 마음의 기운까지 빼앗아 버리는 것 같습니다. 의욕과 활기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반대로 내 안에서 끊임 없이 일어나는 질문이 저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나는 과연 목양을 잘하고 있는가?’, ‘내 설교가 성령의 조명하심 아래 쓰인 하나님의 음성인가?’, ‘성실하고 부끄럽지 않을 만큼 연구하고 일했는가?’. 질문들은 아우성 치는데 정작 저는 제대로 대답지 못해 잠잠하기만 합니다. 무기력과 우울감이 더운 날씨 때문이려니 했는데 아닌 것 같습니다. 목요일 아침 급작스런 소식을 받았습니다. 한여숙 집사님이 지난 밤 응급실에 가셨다가 뇌출혈 소견을 받고 대동맥 조형술을 받고 누워계셨습니다. 뇌경색도 아닌 뇌출혈이라는 말에 더 놀랐습니다. 다른 한 성도님도 부득이한 사정으로 우리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는 형편을 말씀하셨습니다. 미리미리 성도들의 건강을 살피고 기도하지 않았던 제가 참 답답하고, 기도했지만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못해 떠나야만 하는 성도님께 미안했습니다.
곧 들에는 코스모스가 피고 해바라기가 고개를 들어 멀어지는 계절을 환송할 것입니다. 여름이 아무리 강단이 있어도 다가오는 가을을 막지는 못합니다. 여름이 가고 새 계절이 오는 것처럼 우리 삶에 먹구름이 지나고 햇살이 내비치길 기대합니다. 이 마지막 장맛비가 흘러가고 가을의 청명한 하늘이 펼쳐지길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