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모임 주일 아침마다 예배당에 모인 교회 식구들의 얼굴을 봅니다. 함께 찬양하고 말씀을 들을 때 우리가 한 교회, 한 몸임을 느낍니다. 하지만 공동체의 진짜 이야기는 어쩌면 예배 밖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그룹, 한자어 소(小)와 영어 그룹(group)으로 이루어진 단어입니다. 우리말로 바꾸면 작은 모둠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열 명 안팎의 사람들이 무릎이 닿을 듯 가까이 앉아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규모가 되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예수님은 작은 모둠을 좋아하셨습니다. 수천 명을 앉혀놓고 말씀하고 먹이기도 하셨지만, 결국 세상을 바꾸는 파급력은 친밀하게 교제하며 주님께 배운 열 두 명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주일 오후에 소그룹으로 모이려 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소그룹을 목장, 구역, 셀 등의 이름을 붙여 부르는데, 저도 하나 만들어 보았습니다.
곁
서로의 옆자리를 기꺼이 내어주는 공동체가 되길 소망하며 지은 이름입니다. 어려운 신학 공부나 복잡한 교회 현안을 토의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저 주일 들었던 말씀이 내 삶에 어떻게 닿았는지, 지난 주 내 마음을 할퀴고 간 일은 무엇인지 곁에 있는 지체들과 나누고 서로 위로하자는 것입니다.
이 모임에는 리더가 있는데 곁지기입니다. 이 분들 어깨에 힘을 좀 빼셔도 좋습니다. 가르치려 애쓸 필요 없고, 오히려 말을 아껴 다른 분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도록 귀를 크게 열어주시면 됩니다. 소금이나 간장이 완전히 녹아 찌개 맛을 내는 것처럼, 본인이 드러나기보다 다른 지체들의 맛을 살려주는 역할이면 충분합니다. 대화가 엉뚱한 길로 새지 않게 잡아주는 신호등 정도만 되어주시면 곁모임이 참 넉넉해질 겁니다.
함께하는 성도님들도 빈 마음으로 임하지 말고 주일 설교 말씀 중에 내 마음에 닿았던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맘에 담아 임하시면 좋겠습니다. 다 같은 말씀을 듣지만 각자 받은 은혜는 서로 다릅니다. "나는 이렇게 들었는데, 권사님은 저렇게 느끼셨구나" 나누다 보면 내가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손길을 옆 사람을 통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남극 펭귄들은 영하 수십 도의 추위를 서로 몸을 바짝 맞대고 버팁니다. 밖에서 바람 맞던 펭귄이 추워지면 안쪽 펭귄이 슬며시 자리를 바꿔주지요. 이걸 허들링이라고 합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혼자 바람 맞으면 시렵지만 같이 모여 온기를 나누면 제법 견딜만해집니다. 신앙생활 혼자 하면 금방 지칩니다. 우리 교회 식구들, 곁모임 속에서, 삶의 모순과 고민을 있는 그대로 내어놓고 서로의 기도로 버티어내는 그 은혜를 꼭 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복음 1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