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뛰는 삶 2002년 월드컵, 온 국민의 가슴을 뛰게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중간고사 준비가 한창이던 시기였지만 다 내팽게 치고 강당에 모여 고함치며 응원했습니다. 아마 당일 경기를 이겼던 것 같습니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저와 친구들이 강당 무대로 뛰쳐 올라갔습니다. 700명 좌중을 진두지휘하며 30분도 넘게 응원했습니다. 그 때 설치는(?) 저를 보며 ‘저 사람 누구야 관종인가’ 새초롬하게 쳐다봤던 사람이 지금 제 아내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간간히 월드컵 재방송을 접하면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국민학교 5학년, 어느 추운 겨울날 아버지의 전근을 따라 청송으로 이사갔습니다. 부산에 살다가 처음 경험한 시골 라이프였지요. 갈탄을 태우는 교실이 생소했던 기억이 납니다. 주일에 교회를 갔습니다. 원래 신앙생활 띄엄띄엄하시던(?) 부모님 덕에 저도 대충 주일학교 다녔던 그런 학생이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예배당 문을 열었던 순간, 지금도 그 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제 온몸을 휘감더니 정신이 번뜩 차려졌습니다. 이제껏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포근함과 만족감이 가슴에 번졌습니다. 예배하고 싶은 열망과 교회를 향한 사랑이 겉잡을 수 없이 저를 휘감았습니다. 그 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교회를 생각하면 가슴이 뛰었습니다. 목사가 되고 정확히 10년이 되던 해, 저는 제8영도교회에서 처음 담임 목사가 되었습니다. 물론 18년을 교역자로 살아왔지만 담임은 또 다른 이야기지요. 감사도 있었지만 두려움과 막막함이 더 컸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교회를 맡아 잘 섬길 수 있을까’, ‘나 때문에 성도들의 은혜를 못받고 교회가 성장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온갖 염려가 다 찾아왔습니다. 한참 심방 중에 한 집사님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목사님, 우리가 뽑은 목사님입니다. 우리가 꼭 도와드릴겁니다”. 그 때 두근거리던 가슴이 생생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이정도입니다. 누구나 익숙해지거나 나이가 들면 가슴이 식지요. 하지만 요엘의 말처럼(욜 2:28) 늙어도 여전히 꿈꾸고 싶습니다. 시인의 고백처럼(시 92:14) 노년에도 결실하고 진액이 풍부하며 빛이 청청하고 싶습니다. 익숙해져도 뛰는 가슴을 안고 사명을 향해 달려가고 싶습니다.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주님 때문에 힘을 내고 싶습니다. |